김문수 도지사보다 119 응대 시스템이 더 큰 문제다. (수정) 글 들어가기 전 잠시만 썰을 풀어보자면 오늘 이글루스에 들어와서야 상황을 알게 되었고 대략적인 내용 또한 여기서 읽은 글들을 전제로 판단하였다. 이미 상황이 종결난 듯 하여 새로운 견해는 있을지언정 밝혀지지 않았거나 오도된 정황이 새로 드러나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하여 이렇게 글을 적는다. 사실 이미 나와 비슷한 견해를 지닌 분들도 더러 보았기 때문에 굳이 이렇게 글을 쓰는 게 의미가 있나 싶지만 같은 의견들이 하나씩 보태지면 그 생각에 더 힘이 실리지 않을까 싶어서 끄적여본다. 1. 김문수의 전화를 처음 받은 소방대원이 교범 혹은 메뉴얼대로 응하지 않은 것은 공식적이고 실무적인 책임을 물을 때, 즉 형식적인 잘잘못을 따질 때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전제는 교범이나 메뉴얼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과 상당 수의 교범이나 메뉴얼이 항상 '실제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검증된 것을 귀납적으로 추론하여 작성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메뉴얼에 대한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일단 메뉴얼을 어긴 소방대원의 행동에 대해서 먼저 말해보자. 현재 그 소방대원의 의중이나 심중은 누구라도 추측만 가능한 상황이다. 사실 저런 식의 상황실 근무는 어지간히 성실하거나 책임의식이 투철한 사람이 아니라면 대충대충 일처리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터인데 그런 태만함이 신중함과 긴급한 상황판단을 요하는 저 소방대원에게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논하는 것은 이 자리에서 논할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본인 말고는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그래서 이 글에서는 어디까지나 그 소방대원이 '인명구조와 긴급전화의 용도'에 대해 투철한 사명의식을 지녔다고 가정하고 글을 풀어보려 한다.
1-1. 먼저 현재 소방대원이 까이는 이유는 메뉴얼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 기저에는 긴급전화와 장난전화를 자의적으로 판단할 능력이나 자격이 소방대원에게 부여될 수 없다는 논리가 깔려있다. 이유인즉 소방대원 본인이 자의적으로 장난전화라고 판단하여 마음대로 먼저 끊은 긴급전화가 정신병자 내지는 술 취한 사람, 경황이 없어 횡설수설을 하는 사람이 건 '진짜 긴급한 전화'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점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의견에 대해서는 공감하며 동의한다. 그러나 이 의견에 힘이 실리기 위해서는 소방서 상황실의 제반 상황이 충분히 갖춰져 있어야 한다. 즉 '장난 전화일지도 모를 긴급전화'를 자의적으로 판단내리지 않고 상대해도 그 뒤에 걸려올 '정말 긴급할지도 모를 전화'를 받아서 응대할 수 있는 인력과 시스템이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소방대원에게는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전화를 끊을 수가 없기 때문에 수많은 장난 전화와 긴급 전화를 전부 받아주어야 하는 대인력과 그것을 총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따라서 그런 여건이 되지 않은 저 '사명감 투철한' 소방대원에게는 '인명구조를 위한 긴급전화의 용도'에 대해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가) 지금 걸려온 이 장난전화같은 통화가
정말로 긴급한 것일 수 있다고 판단하여 상대방의 요구사항(여기서는 '관등성명'이 되겠다)을 들어주고 계속해서 응대하여 구조 시도를 도모하는 경우.
나) 이 전화 뒤에
걸려올 수 있는 긴급한 전화를 이 장난전화 같은 통화 때문에 못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장난전화 같은 통화를 끊고 정말 구조가 필요한 전화를 기다리는 경우.
문제는 이 두 가지 판단이 전부 인명구조를 위해 상황실에 근무하는 소방대원에게는 타당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기서 가) 를 택하든 나)를 택하든 어느 한 쪽에 대한 구조는 포기하게 되버리고 이에 대한 비난을 면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그 소방대원이 10분동안 관등성명을 대며 친절하게 김문수 도지사의 전화를 받아주었더라도 논란이 생겨났을 것이다. 아마 이번에는 메뉴얼대로 생활하는 것만 옳은 것이냐는 논거를 들면서.
1-2. 물론 소방대원의 태만한 근무 태도에 기인하여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긴 것이라면 이것은 징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소방대원의 의도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이며 공개된 녹취록으로는 그것을 판단하기가 상당히 애매하다고 본다.
2. 그런데 이 소방대원이 징계를 받은 것은 일단
결과적으로 김문수 도지사의 전화가 '결코' 긴급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거기다가 몰상식했던 점은 내가 추가하고픈 덤이다), 메뉴얼대로 따르지 않았기 때문인데 과연 이 메뉴얼이라는 것이 그렇게 실효성이 있고 보편적으로 타당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느냐 하는 점에서는 의문이다.
소방서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FM이 실제로 존재하는 군부대에서는 현실과 괴리감이 흘러넘치는 메뉴얼이 가득하다. 이것은 병사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이야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일테고 소령급 이하의 장교들도 어느 정도는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야기다. 여기에 대해서는 경험에 기반하여 이야기하기 때문에 근거가 어느 정도로 힘이 실릴지 잘 모르겠지만.
내 보직은 작*병이었고 그래서 여러가지 작***등을 수정하고 작성하고 하는 일을 맡았다. 물론 내 머리 속에서 그런 걸 끄집어내서 썼다는 게 아니라 장교들이 옆에서 붙어서 지도해주거나 여기저기서 잘라내온 자료들을 덧붙이는 작업들을 많이 했는데 그렇게 2년동안 3명의 작*장교와 작*과장, 작*참모를 만나면서 느낀 건 대다수의 그런 메뉴얼은 정말이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작성된다는 점, 혹은 그렇지 않고 실무자인 작*장교가 아무리 일을 잘하고 성실해도 윗대가리가 멍청하면 결국 그 메뉴얼은 산으로 간다는 점이다. 유능한 작*장교와 작*과장과 일하면서도 멍청한 작*참모 때문에 작***이라는 메뉴얼을 두세번 뒤엎고 더불어 내 수면시간도 불투명해지는 경험을 많이 해본 나로서는 과연 '메뉴얼'이 그렇게 모든 상황에 대비하여 잘 만들어진 것인지 의문스럽다. 적어도 내가 그 때 보았던 작***라는 메뉴얼은 한 대령의 고루한 자기 아집과 독선, 그리고 인습으로 점철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군대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며 내게 그 메뉴얼의 질을 논할 식견이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메뉴얼이 반드시 모두에게 인정받고 관료제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절대적 방침'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할 수 있는 사례라고 본다.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것일까?
3. 결국 결과적으로 이 소방대원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일로 소방대원과 소방서의 상황이 좀 더 나아지고 피드백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다들 장난전화를 줄이거나 혹은 장난전화를 엄벌하는 법이 제정되어 이번 같은 희극이나 09년도 때 일어난 비극
*1)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 1) : 물론 이것은 소방대원들이 장난전화에 찌들어 피곤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소방대원 측에게 책임이 있기에 장난전화가 줄어들어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최근 덧글